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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5.31.2026
“너희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마음과 참된 신앙의 방향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의 신앙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중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결국 내 생각, 내 필요, 내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신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서 신앙을 시작합니다. 삶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계속해서 자기 중심에 머물게 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신앙을 사용하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말씀 중심의 신앙”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며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방향입니다
5.24.2026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가정교회 3축 4기둥”이라는 주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또 다른 사람을 세우는 공동체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말로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먹고, 함께 걸으며,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진짜 제자훈련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도 목장 모임과 교제 가운데 서로의 삶을 보며 신앙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사역의 분담”이라는 중요한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만 사역하는 곳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성도가 함께 교회를 세워 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장 11-12절은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세우신 이유를 분명히 보여 줍니
5.17.2026
지난 어버이주일 예배를 통해 우리는 십계명 가운데 다섯 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에 특별한 약속을 더하셨습니다.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만큼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귀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부모 공경의 계명은 다른 계명들과 달리 “시한부 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계명들은 언제든지 결단하면 지킬 수 있지만, 부모 공경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만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살아 계실 때 사랑하고, 존경하며, 감사함으로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부모 공경을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말씀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보다 먼저 “네 부모를 공경하라”가 기록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권위는 사람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위입니
5.10.2026
“가정교회 3축 4기둥” 가운데 첫 번째 기둥은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이미 믿는 사람들만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지는 곳입니다. 결국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병원의 목적은 건물이 좋은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좋은 분위기만 만드는 곳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라서 또 다른 사람을 세우는 제자가 되도록 돕는 곳입니다. “가정교회 3축 4기둥”의 두 번째 기둥은 “가르치기보다 보여 주는 제자훈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단순히 교실에서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먹고, 함께 다니고, 함께 사역하시면서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만 들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떻게 사랑하시고, 기도하시고, 섬기시
5.3.2026
지난주 우리는 “가정교회 3축 4기둥”이라는 주제로 "교회의 본질"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내용은 단순한 교회 운영 방식이 아니라, 교회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성경적인 핵심 가치입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기둥인 “교회의 존재 목적”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교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명령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모여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이미 믿는 사람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이 들어와 생명을 얻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 정체성을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교회”라고 고백합니다. 이 목적이 분명할 때 교회는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예배도, 목장도, 성경공부도 결국 이 한 목적을 향해 움직이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를 “병원”이라고도 표현합니다
4.26.2026
지난 주 야외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었던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자연 가운데서 드린 예배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나누고자 합니다. 시편 103편 1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다윗은 이 시편을 시작하면서 단 한 절 안에서 두 번이나 자신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그의 신앙의 고백이자 결단입니다. 우리는 찬양을 감정과 연결해서 생각합니다. 마음이 기쁠 때, 상황이 좋을 때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늘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이 상하고, 지치고, 눌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감정에 맡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영혼을 향해 명령합니다. “내
4.12.2026
이곳이 성전이라는 거짓말 (토요오전 예레미야 설교 1) 예레미야 7장은 “성전 설교”라고 불리는 매우 중요한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성전 문 앞에 세우시고, 예배하러 들어오는 유다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하나님 백성 전체의 신앙 상태를 드러내는 공개적인 심판 선언이었습니다. 당시 유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고, 제사와 절기를 빠짐없이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과 삶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이 있으니 우리는 안전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하나님의 보호를 자동으로 보장한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전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없이 종교적 제도만 붙잡고 있
3.29.2026
색깔로 보는 복음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복음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분명히 이해할 때, 우리의 신앙은 더 분명해지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여섯 가지 색깔을 통해 복음을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이 색깔들은 우리의 인생과 구원의 여정을 잘 보여줍니다. 검정은 죄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씀합니다.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결국 영적인 죽음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이 문제는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구원이 필요합니다. 빨강은 예수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하
3.22.2026
우리는 매우 빠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 안에 인정받고, 성공하고, 많은 것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몇 초 만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신앙까지도 빨리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더 신경 쓰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은 다릅니다. 신앙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긴 시간을 달려가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들여 하나님을 알아가고, 삶 속에서 다듬어지며, 꾸준히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21장 23-32절에서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종교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면서도 자신의 입장과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합니
3.8.2026
"교회는 병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천사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완벽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상처를 받거나 실망을 경험하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에베소서 4장을 보면 바울은 교회 성도들에게 거짓말을 버리고, 분을 조심하고, 도둑질하지 말고, 더러운 말을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도 여전히 연약하고 죄 많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오히려 교회는 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병원에는 아픈 사람들이 모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상처받은 사람,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료와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1.2026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개막식을 준비하며, 미국을 상징하는 흰머리 독수리를 날게 하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렵게 한 마리를 구했지만, 그 독수리는 오랫동안 보호 속에 지내며 제대로 날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름은 번버라였습니다. 조련사는 훈련을 시켰지만, 결국 그 독수리는 날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독수리에게 날라고 요구하는 것이 무리였을까요? 아닙니다. 독수리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래 날지 않다 보니, 날아야 할 존재가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이 땅의 증인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것이 당연하듯,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도 당연한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의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며, 전도와 사명을 뒤로 미루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가라”고 말씀하십
2.22.2026
지난주 우리는 “증인의 삶” 네 번째 말씀으로 말로 하기 전에 먼저 삶으로 드러나는 "증인다운 삶"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실망과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로 전하는 복음보다, 우리의 삶이 더 중요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본문이었던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원망하거나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에도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큰 지진으로 감옥 문이 열렸지만, 그들은 자신의 자유보다 간수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진실한 태도와 긍휼한 행동, 그리고 희생적인 선택은 결국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을 예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증인의 삶은 특별한 사람이 사는 삶이 아닙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삶이 아니라,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삶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긍휼을 베푸는 삶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2.15.2026
“증인의 삶 III” (보고 배우게 하는 삶) The Life of a Witness III (A Life That Leads Others to See and Learn) 마가복음 3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어떻게 함께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신 후, 먼저 그들을 가르치기보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론만 가르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사시며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만 들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며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듣고 배우는 훈련”이 아니라, “보고 배우는 훈련”이었습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듯이 사람은 말보다 모습을 통해 더 많이 배웁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보다 부모의 삶을 보고 자랍니다. 말로는 옳은 것을 가르칠 수 있지만, 삶이 따르지 않으면 그 가르침은 힘을 잃습니다. 그래서
2.8.2026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에 나오는 613개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힘써 왔습니다. “하라”는 계명과 “하지 말라”는 계명으로 나누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계명을 다 기억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율법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큽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이 이 두 말씀에 담겨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로 나옵니다. 바쁘고 피곤해도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반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아직 복
2.1.20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영혼을 세상 모든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만큼 한 영혼은 소중합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인 우리도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라, 한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입니다. 성경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 큰 기쁨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어 봉사하고 애쓰지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오랜 신앙생활 속에서 이것보다 다른 것을 더 앞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다”고 하셨습니다. 양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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