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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3.29.2026
색깔로 보는 복음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복음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분명히 이해할 때, 우리의 신앙은 더 분명해지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여섯 가지 색깔을 통해 복음을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이 색깔들은 우리의 인생과 구원의 여정을 잘 보여줍니다. 검정은 죄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씀합니다.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결국 영적인 죽음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이 문제는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구원이 필요합니다. 빨강은 예수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하
3.22.2026
우리는 매우 빠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 안에 인정받고, 성공하고, 많은 것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몇 초 만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신앙까지도 빨리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더 신경 쓰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은 다릅니다. 신앙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긴 시간을 달려가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들여 하나님을 알아가고, 삶 속에서 다듬어지며, 꾸준히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21장 23-32절에서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종교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면서도 자신의 입장과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합니
3.8.2026
"교회는 병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천사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완벽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상처를 받거나 실망을 경험하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에베소서 4장을 보면 바울은 교회 성도들에게 거짓말을 버리고, 분을 조심하고, 도둑질하지 말고, 더러운 말을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도 여전히 연약하고 죄 많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오히려 교회는 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병원에는 아픈 사람들이 모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상처받은 사람,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료와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1.2026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개막식을 준비하며, 미국을 상징하는 흰머리 독수리를 날게 하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렵게 한 마리를 구했지만, 그 독수리는 오랫동안 보호 속에 지내며 제대로 날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름은 번버라였습니다. 조련사는 훈련을 시켰지만, 결국 그 독수리는 날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독수리에게 날라고 요구하는 것이 무리였을까요? 아닙니다. 독수리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래 날지 않다 보니, 날아야 할 존재가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이 땅의 증인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것이 당연하듯,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도 당연한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의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며, 전도와 사명을 뒤로 미루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가라”고 말씀하십
2.22.2026
지난주 우리는 “증인의 삶” 네 번째 말씀으로 말로 하기 전에 먼저 삶으로 드러나는 "증인다운 삶"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실망과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로 전하는 복음보다, 우리의 삶이 더 중요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본문이었던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원망하거나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에도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큰 지진으로 감옥 문이 열렸지만, 그들은 자신의 자유보다 간수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진실한 태도와 긍휼한 행동, 그리고 희생적인 선택은 결국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을 예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증인의 삶은 특별한 사람이 사는 삶이 아닙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삶이 아니라,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삶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긍휼을 베푸는 삶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2.15.2026
“증인의 삶 III” (보고 배우게 하는 삶) The Life of a Witness III (A Life That Leads Others to See and Learn) 마가복음 3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어떻게 함께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신 후, 먼저 그들을 가르치기보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론만 가르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사시며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만 들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며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듣고 배우는 훈련”이 아니라, “보고 배우는 훈련”이었습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듯이 사람은 말보다 모습을 통해 더 많이 배웁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보다 부모의 삶을 보고 자랍니다. 말로는 옳은 것을 가르칠 수 있지만, 삶이 따르지 않으면 그 가르침은 힘을 잃습니다. 그래서
2.8.2026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에 나오는 613개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힘써 왔습니다. “하라”는 계명과 “하지 말라”는 계명으로 나누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계명을 다 기억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율법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큽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이 이 두 말씀에 담겨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로 나옵니다. 바쁘고 피곤해도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반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아직 복
2.1.20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영혼을 세상 모든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만큼 한 영혼은 소중합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인 우리도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라, 한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입니다. 성경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 큰 기쁨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어 봉사하고 애쓰지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오랜 신앙생활 속에서 이것보다 다른 것을 더 앞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다”고 하셨습니다. 양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지금도
1.25.2026
요한복음 마지막장인 21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상처 입은 제자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 깊은 좌절 속에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의 마음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가장 익숙했던 갈릴리 바다로 돌아가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책망이나 질문보다 먼저 "함께 식사하자"고 하십니다. 숯불을 피우시고 떡과 생선을 준비하신 예수님의 모습에는 베드로를 향한 사랑과 배려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숯불 앞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날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기억을 꺼내어 정죄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베드로를 "치유하시기 위해" 다시 만나 주셨습니다. 식사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베드로의 실패를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을
1.18.2026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부르시고 가장 먼저 전도자로 파송하셨습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는 그 다음 문제였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먼저 능력을 주시고, 그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목적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직장에 들어갈지, 자녀를 어떤 학교에 보내야 할지, 어떤 사업을 해야 할지, 이런 것들이 삶의 최우선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이유는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10:16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6) - 양 같은 제자의 연약함 양은 겉보기에
1.11.2026
우리는 종종 “신앙”을 열심이나 노력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신앙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마치 길을 잃은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쉽게 다른 것들을 붙잡고 살아가게 됩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삭개오를 만나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지만,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신앙은 큰 체험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삭개오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듣고, 마음에 작은 관심이 생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돈은 있었지만 만족이 없었던 삭개오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보았습니다. 삭개오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내려놓음이었습니다.
1.4.2026
새해를 시작할 때마다 우리는 “올해는 더 잘 살아보자”는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로서 우리가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리고 또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입니다. 지난 주일과 송구영신 예배에서 우리는 로마서 15장과 16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에 원하시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로마서 15장은 교회 안에서 "믿음이 강한 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줍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 강한 사람은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내려놓고, 약한 자의 연약함을 기꺼이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한 사람과 이제 막 교회에 나온 사람이 함께 예배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자기를 기쁘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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