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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9.27.2026
우리는 보통 기도를 시작할때 "하나님 내 문제를 도와주세요"로 시작할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기도문'은 우리가 가장 많이 외우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예배 끝에 생각 없이 빨리 외우고 끝날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혼잣말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덕분에 받은 큰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주기도문의 처음 세 가지 기도는 모두 하나님을 향합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도를 "나"로 시작하면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볼 때 하나님도, 나 자신도 바로 보입니다. 또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나라가 임하옵시며"라는 고백에서 천국은 죽어서 가는 천국만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 삶을 하나님이 다스려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입니
9.20.2026
형제 사랑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게 하고, 그분을 체험하게 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사랑이 삶의 중심이 될 때, 비로소 형제를 사랑할 힘이 생깁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특별한 특권이 있습니다. 사랑이 곧 삶의 집이 된 사람은 자신의 기분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사랑하며, 그 안에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립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고 담대함을 줍니다. 기도하는 자와 사랑을 베푸는 자만이 이 담대함을 누리며,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Loving our brothers and sisters is what makes the invisible
9.13.2026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압니다. 성도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세 가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이 만들어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이며,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사랑할 때, 오히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그 사랑을 아들을 보내심으로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죄인이었을 때,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내어주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그 사랑을 당연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셋째로,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9.6.2026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함께 존재합니다. 겉모습만으로는 무엇이 진짜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누가 정말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절부터 6절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먼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고백합니다. 초대교회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실제 육체로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라 가르쳤지만, 요한은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이 하나님께 속한 첫 번째 증거라 말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훌륭한 선생님 정도로만 인정하고 십자가의 구원자로는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바른 고백은 지식에 머물지 않고 삶을 바꿉니다. 또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거짓 영들이 세상에 많아도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8.30.2026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죄를 미워하고 의를 행하며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으로 위축될 때가 있지만, 사도 요한은 그 담대함이 어디서 오는지 가르쳐 줍니다. 세상의 담대함은 자신을 믿는 용기지만, 성경의 담대함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데서 나옵니다. 첫째로,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할 때에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양심이 스스로를 책망하며 낙심하게 만들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사랑도 잊지 않으십니다. 둘째로, 담대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놀라운 특권을 누립니다. 사람 앞에서는 자신을 꾸밀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입니다. 다윗이 시편 139편에서 자신을 살펴 달라 기도했던 것처럼, 정직하게 나
8.23.2026
살아가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도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통해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내 안에 정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을 사랑과 미움을 통해 보여줍니다. 미움은 자기중심적인 마음에서 자랍니다. 가인이 아우 아벨을 미워하고 결국 죽인 것도, 아벨이 악해서가 아니라 가인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곧 십자가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신 사랑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은 반드시 밖으로 드러납니다. 가인의 마음속 미움이 결국 살인이라는 행동으로 나타났듯이, 우리 안의 미움도 관계를 끊고 거리를 두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사랑은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타나야
8.16.2026
지난주는 저희 주님의교회에게 참 특별한 한 주였습니다. 창립 10주년을 맞아 노진준 목사님을 모시고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토요일과 주일 강단에서 전해주신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5장 1절부터 9절 말씀을 본문으로 전해주신 "오직 그리스도"라는 제목의 말씀은 베데스다 못가에 삼십팔 년 된 병자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어떤 방법이나 조건, 혹은 우리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한 분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못에 먼저 들어가야 낫는다는 세상의 조건과 순서 속에서 늘 뒤처지고 낙심할 수밖에 없었던 그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가 "일어나 걸어가라"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 오랜 세월의 좌절 앞에서도 여전히 찾아오시고 붙드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심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가치와 기준들이 우리를 흔들어도, 결국 우리가 붙잡아야 할
8.2.2026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선포합니다. 우리의 신분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은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갑니다. 부모의 자녀가 부모를 닮아가듯이, 하나님의 자녀도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갑니다. 이것은 억지로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 다시 오실 날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아직 연약하고 넘어질 때도 있지만,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은 아닙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히 닮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소망이 오늘 우리의 삶을 깨끗하게 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7.26.2026
우리는 무엇이 진짜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AI 기술의 발달로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래전부터 마지막 때에는 거짓된 가르침도 함께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에서 성도들에게 이러한 세상을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말고 대신 진리를 분별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기준은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기보다 처음부터 들었던 복음 안에 거하라고 말합니다. 변하지 않는 복음이 우리의 믿음을 지켜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 안에는 성령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진리 가운데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며, 끝까지 예수님 안에 거하도록 붙드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복음을 붙들고, 성
7.19.2026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무엇을 가장 사랑해야 하는지 분명히 압니다. 세상은 돈과 성공, 인정받는 삶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영원한 것을 선택합니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언젠가는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은
07.12.2026
우리는 자주 "나는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성경 지식을 많이 쌓거나 교회를 오래 다닌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을 알려 줍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사랑은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사랑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조건에 따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먼저 사랑하고 용서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 어둠 가운데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사랑으로 말하고, 사랑으로 행동하며, 다른 사람을
7.5.2026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다니고 예배를 드리며 성경도 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순종은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먼저 베풀어 주신 사랑에 대한 감사의 응답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 거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예배 가운데 주님과 동행할 때 우리의 삶은 조금씩 변화됩니다. 성품이 변하고, 말이 변하며, 삶 속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6.28.2026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어떤 아이가 자전거를 배우다가 넘어졌습니다. 무릎이 긁히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달려와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다시 해보자." 아이는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넘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진 후에 어디로 향하느냐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 1-2절에서 우리에게 두 가지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1.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고 해서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위험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가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고 힘씁니다. 2. 넘어졌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실패했을 때 우리는 쉽게 이런 생각에 빠집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나는
6.21.2026
러시아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가기 전에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세 번 기도하라.” 이 말은 인생에서 누구와 함께 걷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줍니다. 좋은 동행자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동행자가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도 “내가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기뻐하지 않고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배웠기 때문입니다. 좋은 환경보다 더 큰 축복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1.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삶.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죄를 숨기지 않고 회개하며
6.14.2026
그리스도인의 확신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나는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가?” “나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가?” “내 믿음은 진짜인가?” 사도 요한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요한일서를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이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 기록되었다면, 요한일서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기록된 편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환경을 기준으로 신앙을 판단합니다. 기도가 잘 되면 믿음이 좋은 것 같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과 환경은 늘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우리의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또한 확신은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서 자라갑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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